이번에는 조금 시간이 지난 여행의 후기를 써볼까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작년 11월 11일,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에 자연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있던
저와 제 친구들은 함께 자연으로의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합니다.
한편, 저는 이런 여행을 매달 할 계획도 있었죠.
이유는, 10월에 벨기에 정부에서 국내관광을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공짜 기차 티켓 12회짜리를 벨기에 거주민들에게 배포했기 때문이죠.
(티켓은 10월부터 3월까지 한 달에 편도 두 번, 즉 왕복 한 번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짜 티켓까지 생겼는데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목적지는 어디가 됐든 일단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자.
원래는 어디 산이나 갈까 했는데, 첫 여행이다 보니 조금 가벼운 곳으로 마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어디 갈만한 곳 없나 검색하던 중,
Château de la hulpe(라훌페의 성)라는 곳을 알게 되었죠.
브뤼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근처에 숲도 있고
가볍게 여행하기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이 됐습니다.
그냥 이 정도쯤에 있구나만 확인하고
지도 한 번 안 살펴보고 그냥 갔습니다.
기차 타고 가서 좀 걸으면 되겠지 이런 생각이었죠.
저기에 뭐가 있는지, 거리는 얼만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그저 어딘가 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평소 제 여행 스타일은, 최적화된 플랜에 백업 플랜 A, B, C까지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무 계획 없이 갔습니다.
저희는 기차 안에서 만나 라훌페에 도착 후,
가고자 했던 라훌페의 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는 그저 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 꺼내서 사진 찍을 생각조차 안 했었습니다.
다만, 산지 얼마 안 된 카메라가 있었기에 동영상은 조금 찍었습니다.
시내를 지나가다가 웬 버려진 건물이 보이길래 냉큼 들어갔습니다.
남자 셋이 모이면 원래 이런 거에 환장합니다.
아마 과거 카센터가 아니었을까 싶은 꽤 큰 규모의 건물이었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볼게 많았어요. 각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은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죠.
여행 전에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라고 알려줬었죠.
그리고 간식으로 나눠먹으려고 빼빼로(Mikado)를 두 개 사갔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제 말을 듣고
빼빼로를 두 당 한 통씩 사 왔었습니다.
다 먹은 후에는 뱃속이 너무 달아서
앞으로 며칠간은 빼빼로는 전혀 먹고 싶지 않을 것 같았죠.
버려진 건물 구경을 마치고, 약 3km를 걸어 성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날은 날씨가 흐린 날이었는데 오히려 분위기 있고 벨기에 다운 날씨라고 좋아했었죠.
입구에 들어오기 전 호수 건너편 멀리 성이 보이는데,
동화나 소설에 나올법한 분위기였어요.
성만 생각하고 이곳을 찾아왔는데
성 주변 공원이 굉장히 멋지고 큰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Domaine régional de Solvay라고 불리는 곳인데, 과거에는 브뤼셀 남동쪽의 큰 숲 Forêt de Soignes의 일부였고, 1833년 한 사람이 이곳을 구입하여, 공원으로 개간하고 가드 하우스와 농장을 지은 다음, 성을 건설한 것이죠. 후에 그 유명한 Ernest Solvay가 여름 별장으로 쓰려고 1893년 매입하였고, 공원을 재개발하고 부동산을 확장하여 1920년에 와서는 490헥타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1972년 땅을 물려받은 Ernest-John이 사망하며, 227헥타르의 땅을 대중이 이용할 수 있게 오픈했습니다. |
실제로 공원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공원 입구에서 성까지 직선거리만 1km가 넘습니다.
공원에는 정말 오래되고 멋진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이 세 나무는 입구에 들어오면 딱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있었어요.
만들어진 길로 안 가고 언덕을 넘어 올라갔습니다.
건너편 풍경이 매우 예뻤습니다.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밥 먹는 곳 옆에 있던 나무들.
공원에는 쓰레기통이 곳곳마다 있기 때문에
도시락 먹은 후에 쓰레기 처리하기가 편합니다.
공원이 크다 보니 산책로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어떤 길은 언덕 위를,
어떤 길은 풀숲을,
어떤 길은 호수 옆을,
따라 걷게 되어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긴 꽤나 유명한 공원이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이날은 사람이 많이 없었어요.
날씨도 흐리고, 비가 온 탓에 땅도 질퍽질퍽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흐린 날씨에도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면
좋은 날에 오기에 매우 좋은 곳이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건물을 좋아해서,
친구와 이건 무슨 스타일일지 언제 지어진 것일지 추측하며 다가갔습니다.
그래도 벨기에 살면서 나름 많은 성과 건물을 봐서
1800년 초에 지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일 거다라고 결론을 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거의 정확히 맞췄었어요. (생색)(자찬)
1842년 완공된 플랑드르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성이었죠.
솔베이가 이 건물을 사들인 후에,
유명 건축가인 Victor Horta에게 성의 내부 설비 검토를 맡겼다고 합니다.
성은 사방이 뻥 뚫린 언덕 위에 있었어요.
성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숲 속 트래킹 길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이 잔디밭을 지나오는 게 매우 힘들었었습니다.
땅이 아주 질퍽질퍽해서 한걸음 한걸음 걷기가 힘들었어요.
이 숲의 각 구역은 자신만의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가는 곳마다 색다른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울창한 숲에 들어오니 뼛속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공원 중간에는 작은 미술관도 있었어요,
앞에 재미있는 동상도 있어서 사진 찍기도 좋고 한데,
이런 다른 모습들은 나중에 다른 게시물로 소개하도록 할게요.
이미지가 왜 깨진 건지 모르겠는데,
뭐 이것도 나름 특별하니까 그냥 내버려둘게요.
승마학교도 있어서 마구간, 말 훈령장 등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말 똥냄새가 많이 났어요.
옆에는 무슨 기름 넣는 펌프도 있길래
요즘 말은 디젤로 달린다는 농담도 했었어요.
고흐 그림처럼 생겨서
고흐 창문이라는 이름을 수여하겠습니다.
성 바로 옆에는 굉장히 잘 꾸며진 르네상스식 정원도 있었어요.
거기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있었죠.
친구 하나가 잠을 거의 못자고 왔다고 뻗은 덕분에
거기 계단에 앉아서 꽤나 시간을 보냈었네요.
늦은 오후쯤에는 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다들 따뜻한 햇빛을 받으러 성 앞뜰에 모여있습니다.
노을 지는 거 타임랩스 찍겠다고 카메라 내려놓고
해 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는데, 카메라 녹화가 사실 안 되고 있었습니다. -_-
그리고 웬 벌레 하나가 카메라를 향해 다가가더니
하필 카메라 위를 열심히 기어 다녔습니다.
처음 이 호수 건너편으로 성이 보일 때에는
미스터리 한 외딴섬의 성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노을 속에서 바라보니 낭만적인 느낌입니다.
이상 라훌페 힐링 여행기를 마치겠습니다.
나중에 라훌페 성 및 솔베이 영지 소개글로 다시 한번 제대로 소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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