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여행2021. 1. 19. 08:10

 

 

2021년 1월 7일

 

오늘은 벨기에 동쪽 끝에 있는 도시 오이펜(EUPEN)에 갔습니다.

 

예전에 리에주(LIEGE)에 살 때 브뤼셀(BRUSSELS)을 갔다 오는 길에는 늘 오이펜행 기차를 탔었는데,

오이펜이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었죠.

 

그때 항상 기차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독일에서 오는 관광객이거나 독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오이펜이 독일어권 지역 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 오이펜

벨기에에는 네덜란드어 공동체, 프랑스어 공동체 외에 독일어 공동체도 있는데,

위 벨기에 지도의 오른쪽 끝에 보이는 빨간 부분이 독일어 사용 지역입니다.

저 중에 윗 부분에 오이펜이 속해있죠. 

 

저는 이번이 벨기에 독일어권 지역 첫 방문이었습니다. 

심지어 함께 동행한 벨기에인인 친구도 독일어권은 처음이라고...  

 

 

 

이 날 방문은 본래 오이펜에 있는 IKOB이라는 현대미술 전시관에 방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에 오이펜의 다른 곳들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오이펜에는 가볼만한 장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시회만 간단히 본 후에 브뤼셀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도시를 구경할 생각이었죠.

 

그렇게 기차를 타고 오이펜을 향해 가는데...

 

벨기에 오이펜행 기차 안

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말이죠. 

 

올 겨울 첫눈이었습니다.

벨기에 남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눈이 내린 적이 없었거든요.

 

눈을 보고 들뜬 저와 제 친구들은 오늘의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눈 보러 가기'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그냥 '눈 구경하기'입니다. 

 

 

오이펜 기차역 승강장

오이펜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더 많은 눈을 찾아 떠날 계획입니다.

 

 

기차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이런 쇼핑 갤러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 날은 COVID-19로 인해 닫혀있는 상태였습니다.

 

 

저희는 눈이 가장 많이 있을 법한 외각지역의 녹색지대로 목적지를 정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눈과 추위여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걸어가며 옷도 정비하고 눈 내리는 날씨에 적응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후드모자와 겉옷에 달린 모자만 있었는데, 덕분에 앞머리가 완전히 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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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펜 구시가지

저희가 정한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오이펜 구시가지를 지나야 했습니다.

처음 길에는 눈 맞는 것에 정신없어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고,

오는 길에는 기차 시간에 맞춰 뛰느라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그냥 보시죠.

 

오이펜 구시가지는 확실히 독일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치 해외여행을 온 것 같았습니다. 

독일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요소는 아무래도 독일어로 된 간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건물의 외견도 확실히 벨기에 것보다는 독일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 지역이 과거부터 독일 땅이었던 탓이겠죠. 

(이 지역은 본래 독일 땅이었다가 세계 1,2차 대전을 거치며 벨기에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벨기에 같기도 하고 독일 같기도 해서 재밌었습니다.

 

어찌 됐든 눈이 안 왔다면 굉장히 평범했을 텐데, 

눈 속을 헤쳐나가며 걷다 보니 왠지 더 예뻐 보이고 여행도 재미있었습니다.

 

EUPEN Sankt Nikolaus 성당 뒷 골목길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던 성당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 미리 외관을 봤는데, 상당히 독특해서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Sankt Nikolaus

성 니콜라 성당입니다.

왼쪽 탑에 달린 해시계가 인상적입니다.

 

이 성당은 1700년대 초에 짓기 시작해 1800년도 말쯤에야 완공됐다고 합니다.

내부는 전형적인 독일 성당과 전형적인 벨기에 성당의 중간 어딘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이펜 외각으로 이동 중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덧 시내를 벗어나 'Limburger Weg'라는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Limburger Weg

일자로 길게 쭉 뻗은 길인데, 

양 사이드에는 아무것도 없는 평지로 전망이 매우 좋습니다.

역시 버거는 언제나 옳습니다. 

 

Limburger Weg

길에서 북편을 바라보면 들판이 있고,

들판을 지나 작은 물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마을이 있습니다.

 

안내판

길 중간에는 안내판도 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무엇인지 사진과 함께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 장소가 전경이 좋은 곳이라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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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burger Weg 길의 풍경

저희는 그냥 길 끝이 나올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걸었습니다.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눈을 맞으며 걷는 게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차가움은 때로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만 때로는 상쾌감을 주기도 합니다.

 

 

걸어가며 중간중간 상당히 격렬한 눈싸움도 했는데, 

눈이 굉장히 쉽게 잘 뭉치고 알갱이도 컸습니다. 

한 번 먹어도 봤는데 적당히 맛있었습니다. 

아마 코로나 사태 이후 공기 질이 조금 좋아진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보다 귀한 카메라

사람도 씌워주지 않던 우산을 카메라를 위해 꺼냈습니다.

눈이 카메라 렌즈에 달라붙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산을 씌워줘야 합니다.

 

Limburger Weg, 남쪽

 

Limburger Weg, 북쪽

풍경이 참 좋습니다.

 

이 길에서 산책하는 주민들을 이따금씩 만났는데,

프랑스어로 인사하시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열심히 'Guten tag'을 외쳤습니다.

언제 또 써볼까 싶어서요.

 

처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걷다가 중간부터는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상쾌해서 좋았지만 그만큼 춥기도 하더군요. 마스크의 보온효과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여름에는 답답한데 겨울에는 마스크를 쓰면 따뜻해서 사람들이 더 잘 쓰는 것 같습니다. 

 

Membach Arrêt Doum

 

그렇게 한 참 걷다가 어느 버스정류장에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간단히 집에서 가져온 빵이랑 마트에서 산 샌드위치랑 과자를 나눠먹었습니다.

 

많이 걸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와서 지도로 확인해보니 한 5km 정도밖에 안 걸었더군요. 

중간에 나무도 올라가고, 사진도 찍고, 옆 길로 새서 조금 더 길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Camping Hertogenwald

 

이제 슬슬 전시장에 가기 위해 시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근처에 있던 캠핑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캠핑장을 눈 아래서 걷자니,

마치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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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제일 안쪽 다리를 건너 계곡 맞은편으로 가니

숲 속에 계곡길을 따라 산책길이 나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쭈욱 걸어 시내로 향했습니다.

 

한 겨울에 물소리를 들으며, 눈을 맞으며 걸으니 참 색다른 기분입니다.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눈 내리는 소리와

강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집니다. 

 

 

마지막으로 판때기 다리를 건너고 강둑을 올라 산책길을 벗어났습니다.

거기에는 공장지대 뒤쪽 들판이 있었죠. 이 캠핑존과 산책길의 한쪽은 자연으로 가득하고

반대편은 플라스틱 제조회사나, 물류업체, 재활용품 수거장 등등 공장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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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희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 IKOB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전시장 후기는 다른 글로 써볼까 합니다.

 

 

돌아오는 기차

 

전시장 방문 후에는 기차 시간에 맞춰 온다고 역까지 15분간 언덕길을 달려야 했습니다.

한겨울에 맞은 눈이 전부 땀방울이 됐습니다. 달리는 기차 창문에 맺힌 눈방울처럼요.

 

이상 오이펜(EUPEN) 방문기였습니다.

 

눈 오는 날씨 덕에 제대로 즐겼던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BeY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