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브뤼셀의 가장 유명한 인물,

오줌싸개 소년을 소개하겠습니다. 

 

오줌싸개 동상

유럽의 3대 썰렁 동상이라고도 불리는 오줌싸개 동상.

유명세의 비해 크기가 매우 작고 볼품없어서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죠. 

 

 

 

오줌싸개 소년은 브뤼셀 중심지인 그랑플라스에서 두 골목 정도만 지나면 나옵니다.

근처에는 여러 쵸콜릿샵과 와플가게가 있습니다. 

 

오줌싸개 동상이 있는 Rue du chene 

 

건너편에는 예쁜 펍들도 있고, 중고서점, 레코드 가게도 있죠. 

 

오줌싸개동상 맞은편 펍

 

근처에는 학교도 몇 개 있는데,

제가 다니던 학교도 이 근처여서

늘 동상 근처 와플가게에서 와플을 사 먹곤 했습니다. 

 

 

이 근처가 아마 벨기에에서 유일하게 

단 1유로에 와플을 먹을 수 있는 곳일거에요. 

기본 와플의 평균 가격은 2유로 이상입니다. 

 

 

여기도 몇 년 전에 담합을 했는지 와플이 2유로로 올랐었지만

2021년 현재 코로나로 관광객이 줄어든 탓인지 몰라도 1유로로 다시 떨어졌습니다. 

물론 어떤 토핑을 올리느냐에 따라 가격이 올라갑니다.  

 

 

바로 윗골목에는 

오줌싸개 동상 코스튬 박물관이 있어서, 

역대 오줌싸개소년이 입었던 코스튬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오줌싸개 소년은 특별한 기념일이면 옷을 입거든요. 

 

 

또는 특정 기념일에, 

오줌싸개 동상에서 물 대신에 다른 게 나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우유캠페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생우유가 나오더군요.

맥주 행사 때는 맥주가 나오기도 합니다. 

 

 

오줌싸개 소년은 1619년도에 제롬 듀케뉴아가 만든 동상입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 동상이 그렇게 유명한지 궁금해하죠.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오줌싸개소년과 얽힌 여러 설화들과 

오줌싸개 소년 동상의 역사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줌싸개 동상의 역사

(오줌싸개 소년의 생애)

(유년기)

 

오줌싸개소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4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daer dmenneken pist

 

 

수도관 네트워크에 관한 행정 서류에서 

브뤼셀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분수대를

'아이가 오줌을 누는 곳'이라고 지칭하죠.  

 

그러니 이미 15세기에 오줌싸개 소년 동상이 있었던 겁니다! 

 

 

1572년도에 만들어진 지도에도 

오줌싸개 동상의 흔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사거리에 있습니다. 

현재의 오줌싸개 동상 위치와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모양은 현재와는 반대로 벽을 바라보고 싸고 있네요 

 

 

양치기 소년의 옷을 입고있는 오줌싸개 소년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있습니다.

공식 문서상 오줌싸개소년이 처음 입은 코스튬이죠. 

이 그림은 1615년 오메강축제를 그린 그림입니다. 

오메강 축제는 브뤼셀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축제이죠. 

이에 대해 언제 따로 다루겠습니다. 

 

오줌싸개소년 원본, 브뤼셀시립박물관 소장

 

1619년에 오줌싸개소년은 새로운 동상으로 대체됩니다. 

Jérôme Duquesnoy가 청동으로 만들었죠. 

이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오줌싸개 소년의 모습입니다. 

 

 

프랑스의 루이14세가 브뤼셀에 폭격을 가했던 1695년에는

오줌싸개소년이 브뤼셀의 대변인으로 선출되었다고 합니다. 

 

...

 

물론 한 작가의 풍자문학에서 그랬답니다.

벨기에인의 유머감각 어디 안 가네요. 

하여튼 이때부터 오줌싸개 소년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1700년에 새겨진 판화에서 처음으로

오줌싸개소년의 디테일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또, 18세기 중반에는 루이15세가 오줌싸개 소년을 위한 코스튬을 만들어오죠. 

당시 루이15세의 병사 중 하나가 오줌싸개 소년을 훔치려고 시도했었는데, 이에 대한 사과였다고 합니다. 

이 옷이 현재 오줌싸개소년이 가진 옷 중 가장 오래된 옷이라고 합니다. 

 

 

1755년에는 오줌싸개 소년의 옷을 담당하는 첫 코디(Dresser)가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1770년에는 분수대 장식이 로코코 스타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현대의 장식과 굉장히 흡사해졌네요. 

이때부터 오줌싸개 동상이 훨씬 작아 보이게 됐죠 

 

 

가끔은 오줌싸개 소년이 납치(?)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1817년대 초에 동상이 도난당했을 때는 한 달 만에 범인을 잡았다고 합니다.

범인은 33살의 Anotine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동상을 훔쳐 팔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이걸 숨기려고 11조각을 내어 성벽에 숨겨두었는데, 나중에 이를 다시 복원했죠. 

이 사람은 평생 강제노역형을 받았고, 후에 20년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1955년 1957년에도 도난을 당했는데, 

 

1955년에는 한 학생단체가 동상을 훔쳐 앤트워프까지 가져갔다고 합니다.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로 번 돈 80,000 벨기에프랑을 장애인을 위해 기부했다고 합니다. 

 

 

1965년에는 하반신은 잘린 채로 상체만 사라졌다고 합니다.

8개월 후에야 상체 부분을 브뤼셀 운하에서 찾았고,  

이후로부터 원본은 박물관에 안전히 보관했다고 합니다. 

 

1978년에는 또 다른 학생 클럽에서 선거에 사용하려고 '훔쳐'갔는데, 

시에서는 그냥 사용하게 내버려두고, 나중에 벌로 동상의 코스튬을 만들 것을 명했다고 합니다. 

이때 만든 코스튬이, 매년 오줌싸개 소년이 맥주를 분출할 때 입는 옷이라고 합니다. 

 

오줌싸개 소년은 이렇게 오랜 기간 브뤼셀의 시민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럼 이제 이 동상에 관련된 설화를 통해

오줌싸개 소년의 기원을 알아보겠습니다. 

 

 


 

오줌싸개소년 관련 설화 및 전설 

 

1. 오줌싸개 소년은 브라방트 공작?

가장 오래된 설화는 브라방트의 Godfrey 3세 공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 공작은 12세기(1140~1190)에 살았던 인물이죠. 

이 분이 아직 2살이었던 1142년에, 부친이 사망하면서 공작의 작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때, 기회를 엿보던 두 귀족 가문이 어린 공작을 상대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아기 공작의 경호원들은 플랜더스 백작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가 군대를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들을 위해 아직 아기였던 공작을 전쟁터 나무에 매달아 놓아 전쟁 중에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3일이나 지속되었는데, 공작의 군대가 밀리는 상황 속에서 

아기가 오줌을 싸기 시작했고, 마침 나무 아래를 지나던 적군이 혼란에 빠지며

결국 전쟁을 승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2. 마을을 구한 오줌싸개 소년 줄리앤

브뤼셀이 적군에 공격을 받아 성벽 안에 들어가서 방어하며 버티던 중

적군은 성벽 아래에 폭탄을 설치해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퓨즈에 불이 붙고... 도시 방어가 뚫리려던 찰나

줄리앤이라는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꺼뜨리고 마을을 구했다는 설입니다. 

 

 

 

3. 왕궁을 구한 오줌싸개 소년

 

1679년 Coudenberg 궁전의 화제사고

 

브뤼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왕궁은 과거 여러 번 화제를 겪은 일이 있습니다.

1731년 2월에 일어난 화제 사고는 브뤼셀의 윗동네를 전부 태워버렸지만,

1679년에는 왕궁의 지붕만 태우는 작은 화제로 끝이 났었죠. 

 

1731년 마을 전체로 번진 Coudenberg 궁전의 화제

화제는 굉장히 추운 겨울날 일어났는데, 불을 꺼뜨릴 물조차 전부 얼어버린 상태였죠.

이때 오줌싸개 소년이 나타나 오줌으로 불을 꺼뜨려 왕궁을 구했다고 합니다. 

 

 

 

4. 노상방뇨에 대한 처벌

옛날 한 소년이 마녀가 살던 집 문에다 오줌을 갈겼다고 합니다.

이를 본 마녀는 몹시 화가 나서 평생 오줌을 싸는 저주를 걸려고 했는데,

이를 알게 된 한 착한 남자가 아이를 동상으로 바꿔치기했다는 것입니다. 

 

 

 

5. 부유한 상인 

중세시대 당시 브뤼셀은 여러 나라의 상인이 드나드는 무역 중심지였습니다. 

한 번은 부유한 상인이 도시에 비즈니스 차 어린 아들과 함께 방문 중이었는데, 

거래를 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아들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상인은 아들을 찾으려 마을을 수소문하며 돌아다녔고,

어느샌가 마을 사람 전체가 아이를 찾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아이를 찾았을 때

아이는 한 골목 코너에서 오줌을 싸는 중이었고, 

이에 부유한 상인은 마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물을 마실 수 있는 분수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6. 무두공 이야기 

이 외에도 오줌싸개에 얽힌 이야기는 많습니다만,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현재 오줌싸개 동상이 있던 거리에는

중세시대 당시 여러 무두질 공장이 있었는데, 

가죽 가공 과정에서 아이들의 오줌을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 놓아 

골목 귀퉁이에서 늘 아이들이 오줌을 쌌던 것이죠. 

 

 

 


 

 

이 외에도 오줌싸개 소년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상 오줌싸개 동상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BeYale